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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 2018-06-11 09:38:00 | ||
흑산도 면장님과 총무과 박태현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저는 대구에 사는 58세 주부입니다. 저희 부부는 5월 27일 흑산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살면서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라 저는 큰 맘 먹고 신랑한테 부탁해서 신랑 친구를 모임에 게스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목포까지 버스로 4시간. 또 다시 배로 2시간 반을 가니 멋진 홍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홍도에서 일박을 하고 이틀째 흑산도 여객선을 탔는데 우리 신랑이 43년 전 얘기를 꺼냈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은 형님 위령비 한 번 보고 싶어서 오는 거다.” 라고 하는데, 순간 내 머릿속은 망치로 맞는 느낌이랄까. 멍해지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한테는 첫째 시숙님이 되시고 신랑한테는 오형제 중 맏이인 형님이 되시는데, 당시 신랑은 중학생이었고, 형님은 23세 젊은 나이에 조기배 선장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를 데리고 고기 잡으러 나가셨다가 흑산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동료 72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 큰 아들 잃은 슬픔을 보고 자란 셋째 동생은 어언 쉰여덟이 되었고, 흑산도에 위령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몇 년 전에 우연히 듣고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흔쾌히 가자고 했는데 저 는 전혀 눈치를 못 챘던 겁니다. 일행들이 여행하는 세 시간 반 동안에 저희 부부는 주민들한테 묻고 또 물으면서 길도 없는 험한 산 속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라 신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핏줄이 뭔지 형님 이름 석 자 보겠다고 소주병 하나들고 점심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안 먹고 두 세 시간을 헤맸으니 뒤따라가는 제 마음도 얼마나 애탔는지 모릅니다. 저는 신랑 마음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흑산도 면장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6.13 선거가 코앞인데 이런 일로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지만, 저한테는 어떤 일보다 저희 신랑이 우선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면서 위령비 사진과 시숙님 이름 석 자만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부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5일째 되던 날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흑산도 면사무소 총무과 직원 박태현입니다. 위령비 위치를 파악해서 빠른 시일 내에 사 진을 찍어 보내겠습니다. 선거철이니 조금만 양해해 주십시오.” 라는 내용의 긴 문자였습니다. 바로 다음 날 열다섯 장의 사진과 함께 길이 험하니 다음에 오실 때는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린다는 내용까지 보내주셨습니다. 보는 순간 눈물이 나는데 그 날 산을 헤맸던 생각과 못 찾고 돌아오면서 흑산도 바닷물이 눈물로 보였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먼저 저희 신랑한테 전화를 하고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저희 신랑 설마 했는데 어떻게 이런 고마운 분이 있냐며 보고 또 보면서 다른 형제들한테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신 형님 보는 것 같이 반갑고 고맙다고 하면서 편지를 보낸 저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흑산도 면사무소 총무과 박태현씨에게 전화 한 통화로 인사는 끝냈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찾아뵙고 꼭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흑산도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흑산도 면장님과 총무과 박태현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ps. 한 가정의 아픔을 내 일처럼 헤아려주신 분들께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이 글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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