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는 신라시대 당나라에 교역시 기항지였는데 당나라 사람들이 지형을 볼때 꼭 자기나라 수도와 같은 형태이며, 지역마다 초목이 무성하여 목마지로도 활용하였기에 '도초(도초)'라 칭하였다. 나주목으로 속했을 당시에는 도치도라 하였다.
부근에 수치, 사치, 팔금, 비금등 조류 형국의 섬중 큰섬이라 해서 도치도라고 하였다 한다. 당시 마을명은 읍동(현고란), 썹다리(신교), 물목골(수항), 오류골(오류), 엄목동(엄목), 죽뻘(죽연), 밤석골(만년), 되내기(도락), 건들(수다), 배날리(나포), 활목(궁항), 발매 달게(월포), 지남 밧지남(외남), 대섬목(죽도) 등으로 최초에 대섬목으로 입도 거주하였다 한다.
'공공누리 저작물 표시 유형4'에 따라 본 저작물을 이용할 경우 출처와 저작권자 표시를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