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개의 명당설] 여덟개의 날짐승 이름이 들어간 八明堂이 있다고 하나 애매하다.
장촌리
장촌리는 장촌(長村:삭은다리) 본부락과 원마(遠馬), 고교(古橋:옛다리), 백기도(白麒島)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法定里名)이다.
본부락인 장촌은 옛날에 마을 앞 길에까지 해수(海水)가 드나드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를 건너는 다리가 썩었다 하여 지금은 삭은 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 읍리로 가는 길가에 팔바위라는 여덟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50년 전만 해도 해가 질 무렵이나 비내리는 밤에는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난다고 하여 사람들이 이 길 지나가기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지금은 간선도로 확장으로 바위가 모두 없어졌다. 탑목 고개 밑 관내에 팔금중학교가 있다.
원마(遠馬)부락에 속한 안산골, 다릿머리, 두 부락 중 다릿머리는 인가가 없어졌다. 370년 전 전주최씨, 350년 전 진주강씨가 입도했다. 각기 세장산이 있다.
고교 부락에 속한 소근목, 백기도 부락 중 소근목의 해변엔 인가가 없어졌다. 백기도는 옛날부터 팔금의 관문인 객선의 기항지로서 1989년 말경 팔금 - 안좌면간 연도교가 완성된 곳이다.
대심리
대심리는 대심(大深:깊은골) 본부락과 소심(小深:작은몰), 대산두(大山頭:큰산두 서너메<본부락에서 재너머란뜻>)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본부락인 대심에는 350년 전 이천서씨가 제일 먼저 입도한 곳으로서 동리 뒤편에 서씨 세장산(世葬山)이 있다.
소심부락 건너편 우물 위의 밭에 80여년 전 팔금학당이 있었으며 부락 앞에 몇 년 전에 건축된 교회가 있다.
대산두 부락은 1980년 경 군 내에서 제일 먼저 취락구조(聚落構造)개선 마을로 선정되어 동내길이 바둑판같이 뚫려진 곳이다. 왼쪽 골짜기 위 산밑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 때문에 절은 없어지고 우물터만 남아 있다. 이 부락에 속한 소드랑섬 수문 안에도 인가가 없어진 지 오래 됐다.
원산리
원산리는 원산(元山) 본부락과 서근(西近), 장목(長目)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본 부락인 원산을 옛날 어떤 도인(道人)이 멀리서 바라보니 마을 뒤에 큰 산이 있어 마을 형세가 좋아 마을에 와 보니 그 산은 바다 건너 암태면 되봉산이었음을 알고 원산(源山)이라 했다고 한다. 그 산이 객산(客山)이라, 이 마을에 객지에서 와서 산 사람은 부자가 되고 본 주민이 오래 살면 망한다고 해서 원산(元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330년 전에 방(方)씨가 입도하여 살았다고 하나 일찍이 없어졌고, 그후 창녕조씨가 입도한 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300년 전 밀양박씨가 입도 주촌을 이루고 있다. 1934년 4월 경 암태 도창교회 김정순전도사의 개척에 의해 팔금에서는 최초로 교회가 설립되었고, 팔명학원도 광복 직전에 이 부락에서 문을 닫고 말았다.
서근부락은 선산김씨 입도지로 세장산이 있다.
장목부락은 1980년 1월 1일 행정리로 승격되었다. 이곳은 임진왜란후 한양조씨가 입도한 곳으로 먼 곳에서 바라보면 숲이 길게 눈에 뛴다고 하여 장목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속한 북진은 암태면 남진을 오고가는 선착장이 있지만 수년 전에 마을 인가가 없어졌다.
읍리
읍리는 읍리(邑里<골안>) 본부락과 덕진, 소산두(小山頭:작은 산두)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본 부락인 읍리리는 면 중심지로서 각 기관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 진고 저수지 부근에 포구(浦口)와 덕진에 나루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기항하여 적선의 동정을 살피려고 닭메산에 올라갔었다고 하며 마을에 사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적은 신라형으로 추정되는 석탑이 있고 마을 뒷산 석벽에 날개 돋힌 장사가 무릎을 꿇었다는 움풀 팬 흔적과 그 위편 평석에도 장사 오줌방울이 떨어져 패였다는 곳이 있다.북편 토성의 방품림 30여 주의 노송과 덕진쪽 고목 팽나무가 풍치를 이루고 있다.
소산두 부락은 옛날에 비해 부촌으로 변했고 관내 띠섬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있다. 독석목(돌이 서 있는 목) 삼거리에 어떤 도사가 세웠다는 돌이 서 있다. 소산두 부락에서 바라다보이는 닭메산 계곡 위 산에 1970년 경에 창건된 영덕사가 있다. LA올림픽에서 권투 동메달을 수상한 전칠성도 이 소산두 마을 출신이다. 띠섬은 소산두에 속한 자연부락이다. 현 영덕사 밑 골짜기에 절이 있었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계곡 아래쪽에 우물터가 있다고도 한다.
진고리
진고리는 오림, 진고, 둔봉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까마귀·비둘기·벌의 이름이 들어 있는 3개 부락이기에 비삼촌이라고도 한다. 40년 전에 진고부락에 살았던 북, 가야금, 창을 잘한고 양금종씨의 영향을 받아 북, 장구, 판소리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1973년 중앙방송국 전국 백일장에서 1위를 수상한 정복천 씨도 오림 부락 출신이다. 이 부락에 몇 년 전에 교회가 세워졌다. 370년 전 양성 이씨가 입도한 곳이 둔봉 부락인데 이곳에 세장산이 있다. 진고에는 355년 전 밀양 박씨 입도조 세장산이 있다.
이목리
이목리는 이목 본부락과 거문도, 매도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본 부락인 이목은 325년 전 진주강씨가 전주최씨 데릴사위로 장촌리에서 살다가 두 아들 중 한 분이 분가 정착한 곳으로 배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거문도는 문필봉인 고산이 바로 바라보여 문필로 재주 있는 사람이 난다고 거문이라 하고 매도는 매화나무가 옛날에 많이 있었다고 하나 동백나무도 있다. 1968년 3월 6일 팔금국민학교 매도분교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이목 본부락은 당초 밀양박씨가 355년 전에 입도한 마을로 그후, 전주최씨가 335년 전 원마에서 분가해 정착했으나 후손이 강씨만큼 번성하지는 않았다.
당고리
당고리는 당고 본부락과 고산, 거사도 부락을 합친 법정리명이다.
본 부락인 당고마을 뒤에는 350여년 전부터 길게 대밭으로 울타리가 되어 있었고 신당이 있었다고 하여 당고라 부르다가 고산에 올라가서 마을 형세를 보니 당나귀 형상이어서 당고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길어서 상리, 하리로 나눠 부르기도 한다. 옛날 조세를 거두어 가는 목선이 당 주변 거목을 베어 싣고 가다가 당지기에 의해 배에 불이 나서 파선됐는데 그 파선된 곳인 거사도 뒤 해변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엽전과 불에 탄 쌀이 나왔다고 한다.
고산 부락에는 동복오시가 먼저 입도했고, 그 후에 김해김씨가 해남군 일성산 에서 입도했다고 한다. 1982년 1월 1일 행정리로 승격되었다. 해변가에 선착장이 있는데 면간 연도교가 완성되면 9개 면의 관문으로 각광을 받게 될 곳이기도 하다.
거사도는 이 부락에 속한 자연 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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